[이정하] 신화에서 과학으로의 여정, 신화로 중국 우주 사업 읽기, <프레시안> 2023.11.03.

by mir8566 posted Nov 3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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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가 방아 찧는' 달에 '옥토끼' 로봇 보낸 중국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신화에서 과학으로의 여정, 신화로 중국 우주 사업 읽기

 

유인우주선 선저우 17호와 우주정거장 톈궁

 

지난 10월 26일 중국이 유인우주선 선저우(神舟) 17호를 쏘아 올렸다. 선저우 16호를 자국 우주정거장 톈궁(天宫)으로 보낸 지 5개월 만이다.

 

유인우주선의 이름인 선저우(神舟)를 우리말로 풀이하면 '신의 배'이다. 유유히 하늘을 가로질러 떠가는 배를 연상케 하는 이 이름은 사실 '선저우(神州)'와 글자는 다르지만, 발음이 같은 해음자(諧音字)다.

 

배 주(舟)가 아닌 고을 주(州)를 쓰는 선저우(神州)는 한나라 사마천의 역사서 <사기> 중 맹자와 순자의 생애를 다룬 <맹자순경열전>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전국시대의 음양가 추연(騶衍)은 "중국의 이름은 적현신주"라 하며, 이것이 곧 우 임금이 천하를 아홉 개로 나눴다는 의미를 지닌 구주(九州)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아홉 개의 구주, 즉 81개의 땅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유교 세계관인 구주설을 확대한 개념이지만, 오늘날 선저우는 중국 그 자체를 의미한다. 한편 우주정거장 톈궁은 하늘의 궁궐이라는 뜻인데, 옥황상제와 같은 신이나 신선들이 사는 궁전을 의미한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명나라 소설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난장을 벌이는 곳이 바로 톈궁이다. 

 

화성 탐사선 톈원 1호와 탐사 로봇 주룽 

 

중국 우주 사업에서 발견되는 중국 신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2021년 5월 15일 중국이 쏘아 올린 화성 탐사선의 이름은 톈원(天問) 1호이며, 여기에 화성 탐사 로봇 주룽(祝融)을 실었다. 톈원은 전국시대 시인 굴원이 쓴 장편 시의 이름으로 우리말로는 <천문>으로 알려져 있으며, '하늘에 묻는다'는 뜻이다. 

 

이 시에서 굴원이 답을 얻고자 던지는 질문들은 신화, 전설과 관련이 깊어 중국 신화 연구의 중요한 문헌으로 꼽힌다. 그는 머나먼 태곳적 혼돈에서 세상이 열린 일을 누가 전했는가 하는 질문을 시작으로 세상에 관한 172종에 달하는 의문을 열거하고 있어, 화성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려는 탐사선의 이름으로 톈문은 제격이 아닐 수 없다.

 

화성 탐사 로봇의 이름인 주룽은 우리말로 '축융'이며, 불의 신이다. 불의 신 축융은 보통 나무의 신 구망, 물의 신 현명, 금속의 신 욕수, 흙의 신 후토와 함께 등장한다. "오행을 맡아 다스리는 관원이 있으니 이를 오관(五官)이라고 한다. 이 오관은 실제로 나란히 씨와 성을 받고, 작위를 받아 상공이 되었으며, 제사를 받는 귀한 신이 되어 사직과 오사에 제사되어 준봉을 받는다." 

 

이처럼 <좌전>은 이들이 인간이었던 시절 맡은 일을 뛰어나게 잘해 사후에 신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불의 신 축융은 오행에 따라 여름의 신, 남방의 신이기도 했다. 그래서 중국 한나라 때 기록에 따르면 입하(入夏)가 되면 축융에 제사를 지내기도 했고, 조선에서도 기우제인 우사(雩祀)를 축융을 비롯한 계절 신들에 지내기도 했다. 화성, 다시 말해 불의 별을 탐사하기 위해 불의 신의 이름을 딴 로봇을 보낸 것이다. 

 

달 뒷면 탐사에 성공한 창어 4호와 무인 탐사 로봇 위투 2호 

 

2019년 1월 3일 세계 최초로 달 뒷면에 성공적으로 안착해 세상을 놀라게 한 중국의 무인 달 탐사선의 이름은 창어(嫦娥) 4호다. 미국과 러시아를 능가하는 우주대국이라는 중국의 꿈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준 창어 4호의 이름은 달의 여신 창어, 우리말로 '항아'에서 왔다. 중국은 달 탐사 프로젝트를 그녀의 이름을 따 '창어공청(嫦娥工程)', 즉 항아 프로젝트라고 부른다. 

 

항아는 남편 예가 불사의 여신 서왕모에게 받아온 불사약을 혼자 몰래 먹고 달로 도망쳐 달의 정령이 되었다고도 하고, 두꺼비가 되었다고도 한다. 후자에 관해 남편을 배반한 대가로 벌을 받은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달 속에 사는 두꺼비는 오랜 숭배의 대상이었지 징벌의 결과가 아니다. 해에 삼족오가 살고, 달에는 토끼와 두꺼비가 산다는 것은 오래된 상상으로 고구려 고분 벽화, 한나라 화상석이나 마왕퇴 백화 등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이미지이다.

 

2023110218334992529_l.jpg ▲ 장천1호분 널방 천장석. 북두칠성을 중앙에 두고 왼쪽에는 해(삼족오)를, 오른쪽에는 달(토끼와 두꺼비)을 그렸다. ⓒ국립문화재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