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천황제와 황위계승] 가라하라 히데히코, 유지아 역, 2020, 경인문화사

by 마르셀 posted Jul 28,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번역총서 2.jpg

 

 

 소개
상징천황제의 그 시작과 영향,

현행의 황실전범 아래에서는 헌법 제2조의 ‘세습(혈연)’을 지키는 것조차도 어렵다. 천황제의 단기적 존속, 장기적 단절을 노린 미국 국무성과 GHQ의 생각은 맥아더에 의해 ‘황통 단절이라고 하는 시한폭탄’으로 주도면밀하게 준비되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 직후 일본 정부가 황적 이탈 된 구 황족의 복귀를 추진하지 않은 이유는 천황제의 존속, 쇼와 천황의 면책에 만족하여 다가올 황위 계승의 위기를 조금도 예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재의 천황에게 두 명의 친왕이 탄생했다는 사실도 결과적으로는 구조적인 결함을 담고 있는 황실전범의 개정을 미루게 된 원인으로 작용한다.
본서에서는 상징천황제의 의의를 역사적인 사실을 확인해나가며 재차 고찰하고자 한다. 동시에 상징천황제 아래에서의 황위 계승 방식을 모색하여 맥아더가 장착한 시한폭탄을 안전하게 제거하는 방법을 정면으로 논의해보고자 한다.
목차
서 론

제1장 상징천황제의 탄생
미국 국무성 내의 친일파
패전을 향한 일본 정부의 대응
점령 통치의 개시
맥아더와 일본 정부
이른바 인간선언
헌법 제1조(천황조항)의 성립
상징천황의 역사적 의의
천황 행위의 의미

제2장 전통단절이라는 시한폭탄
「독백록」과 GHQ의 의도
쇼와 천황의 변명
도쿄 재판의 빛과 그림자
계속되는 ‘전후 체제(regime)’
맥아더가 장치한 시한폭탄
‘만세일계’이데올로기
공화제라면 괜찮은 것인가
전통으로 유지되는 상징천황제
종신제와 제사

제3장 황실전범과 황위 계승
관습법으로서의 황위 계승법
직계 계승의 시대
황통에 얽힌 신화의 기원
게이타이의 야마토 입성
중국 황제와의 차이
메이지의 전환
황실전범의 성립
메이지 시대에도 이어진 여계논쟁
본격적인 황실전범으로
GHQ의 방침
전후의 논쟁과 그 함정

제4장 상징천황제의 정착
완전한 상징천황이 될 수 없었던 쇼와 천황
쇼와 천황의 전후정치사
상징천황을 모색한 헤이세이 천황
상징천황제의 구현
궁내청의 역할

제5장 고이즈미 내각의 황실전범 개정안
‘황실전범에 관한 유식자 회의’ 개최
전문가의 견해
여계주의가 배려해야할 것
의견 집약으로
역사를 읽는 법
이해하기 힘든 ‘제사의 문제’
보고서의 내용과 그 의의
민주적에서 안정적으로

종장 전통과 법리
황통보에도 나타나는 여계 천황
실패와 탈주
황실 전통과 궁중 제사의 재검토
법률학자의 이해를 뛰어넘은 법률–황실전범

저자후기
역자후기
주요참고문헌일람
저: 가라하라 히데히코
지은이 가라하라 히데히코
도쿄도(東京都) 출신.
1980년 게오오기쥬쿠대학(年慶應義塾大学)
법학부 정치학과 졸업.
1985년 동대학원 법학과정치학박사.
게이오기쥬쿠대학 법학부 교수.
황위계승문제의 전문가로 활동.
2012년 4월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에서 개최한「皇室制度に関する有識者ヒアリング (황실제도에 관한유식자 히어링)」에 출석.
2016년 11월에 아베 신조(安倍晋三首) 수상의 사적 자문기관인 「天皇の公務の負担軽減等に関 する有識者 会議
(천황의 공무부담경감 등에 관한 유식자회의)」에 전문가로 초청됨.
『天皇と官僚』 (PHP新書)、 PHP研究所、 一九九八年
『歴代天皇総覧』
『女帝誕生』、 新潮社、 二〇〇三年
『明治天皇』 (中公新書)、 中央公論新社、 二〇〇六年

옮긴이 유지아
중앙대학교 사학과 졸업.
일본 릿교대학(立敎大學)에서 일본현대사로 석박사학위 취득.
현재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HK 교수.
『점령과 개혁』(역서)(雨宮昭一, 시리즈 일본근현대사,이와나미 신서), 어문학사, 2012.
『쟁점 한국사-현대편』(공저), 창비, 2017.
「일본 평화헌법의 공동화(空洞化)와 자위대 」(논문)
『일본사상』제37호, 201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