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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일 1956-04-12
발표연대 1950
출처 대통령기록관
대상국가 러시아, 일본, 중국
발표자(원어) 이승만
발표자(한국어) 이승만
관련사건 신탁통치
관련사건(원어) 신탁통치
키워드 신탁통치, 민족자결주의, 세계반공선전,
요약내용 반탁 지지와 친일 행위에 대한 비판에 대한 반박

친일친공한다는 것은 망언이다

 

이승만

1956 4 12

 

 우리나라는 자고로 강한 침략국가들 사이에 끼어 있었으나 국민들이 지혜롭고 용감하게 나라를 보호하여 왔으므로 강국들의 견아상제(犬牙相制)의 중간에서 4천년 영광스러운 역사를 계속하여 온 것인데 지나간 100년 동안 서양세력이 동으로 오는 전무한 위기를 당한 때에 불행히 몽매한 군신과 이산(離散)된 민심으로 남을 의시하는 미약한 태도로 개혁 자강할 정책을 행치 못하고 위미부진(萎靡不振)하든 중에 로국과 중국과 일본이 침략책을 행할 적에는 한국의 반역분자들이 각각 세 나라의 세력을 의지하며 분쟁해서 필경은 일본의 정략에 빠져 속절없이 일본의 영지(領地)가 되여 40여 년간 악화를 당하고 노예의 치욕을 받게 된 것이니 우리 민족이 자자손손(子子孫孫)이 잊지 못할 통분이다.

그 이유로 일인들의 한인은 독립할 자격이 없다는 선전으로 필경은 신탁통치(信託統治) 문제까지 났으나 우리 전민족이 이를 반대하고 투쟁해서 민족자결주의를 발휘하므로 이를 타파하고 따라서 민국정부를 수립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우리 민족이 매국주의 사상에 관련된 자를 다소간 징벌해서 민중의 공분을 품게 하고 정치상 혼잡을 숙청시켰더라면 충역(忠逆)의 분간이 되었을 것인데 그때에는 과거 죄상을 막론하고 포용정책을 써서 전에 무슨 사상과 행동을 행한 사람이든지 다 다시 회개해서 정신통일로 국권회복에 다 동심 합력되기만을 바랐던 것이다.

6
·25사변에 전쟁이 생긴 후로 우리 전민족과 국군 전체가 많은 피를 흘리며 강대한 적군을 막아 싸울 적에 우리가 다 죽어 없어질지언정 다시 남의 노예는 안되겠다는 결심으로 싸워 나온 결과로 지금은 세계가 우리의 독립정신과 독립을 지킬만한 능력을 알고 우방들과 방위조약을 정하고 경제와 군사상 능력을 강화시켜서 지금은 우리가 세계 반공전선 앞에 서서 전진하는 중이니 우리 민족 전체가 다 3·1정신을 지켜서 우리의 정책은 진행해 나가면 날로 부강해 나가서 이웃 강국들이 우리를 넘겨다 볼 수 없는 지경에 나갈 것이다.

그런데 어찌 해서 사욕을 도모하는 정치객들이 국가안위와 민족의 화복을 생각지 못하고 어떤 분자는 정당 명색을 띄고 공산(共産)에 내응이 되어 타국의 재정을 얻어다가 정치상 음모로 자기들이 정권을 잡게 되면 이북 괴뢰군과 합동해서 통일을 이루겠다는 계획을 진행하다가 발각되어 재판을 당하여 모든 죄상이 들어났으나 이 음모를 행하든 정범이 외국으로 달아나서 잡지 못하게 됨에 아직도 결말을 못 내고 있는 중이며 근일에 와서는 또 어떤 사람은 정당의 지도자란 명의를 가지고 외국 신문상에 선언하기를 자기들이 정권을 잡으면 리대통령의 배일 정책을 고쳐서 일본과 협의로 친선을 이루겠다고 하는 이런 망설을 발하고 있으니 이것은 우리가 참 놀라울 일이다. 이런 사람들이 한국의 지도자란 명의를 가지고 대통령 지위를 얻기 위해서 민중에게 투표해 달라는 의사를 표시하기에 이르고 보면 50년 전에 매국매족(賣國賣族)하든 비참한 연극을 재연하는 역사를 이룰 것이나 지금은 우리 국민이 반세기 전과는 달라서 이러한 속임에는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가령 공산당과 음모하든 파당이 국권을 잡게 되면 괴뢰군과 합해서 통일한다 하나 우리 국군과 민중이 많은 피를 흘리고 싸워나가는 것을 물시하고 공산당과 합해서 통일하자는 것을 민중은 아무 말 없이 다 끌려갈 것인가. 또는 친일분자들이 피선되면 일본과 침묵해서 한일 간의 화동을 부친다 하니 일본이 요구하는바 우리나라 모든 재산의 8 5부를 다 허락해 주고 합동하자는 것인가. 이런 언론을 듣는 우리로서는 결코 침묵할 수 없는 형편이니 명확한 대답을 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폭력이나 난동 등 폐단을 엄절히 금하고 정대한 민주정치의 제도로 전국 인민이 정제히 의사를 공포해서 공의를 따라 시행할 것이니 이상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선거 이전에 명확한 대답을 들어야 할 것이다.

(
『대통령이승만박사담화집』 3, 공보실,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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