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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일 1958-10-10
발표연대 1950
출처 『總統蔣公思想言論總集』 卷33 書告, 208-212쪽.
대상국가 중국, 대만, 소련
발표자(원어) 蔣介石
발표자(한국어) 장제스
관련사건 臺海危機
관련인물 주더(朱德), 마오쩌둥(毛澤東)
관련지역 太平洋, 亞洲, 金門
관련 도시 모스크바
키워드 極權統治, 극권통치; 民族大義, 민족대의; 保衛戰, 보위전; 華沙談判, 바르샤바담판, 反攻, 반공; 傀儡組織, 괴뢰조직
요약내용 이번 반공 보위전 승리의 가장 두드러지는 성과는 태평양 서안 최전방에 튼튼한 방어선을 구축하였다는 부분일 것이다. 이로써 공비집단의 무장침략을 대륙의 변연에 한정시켜 대만해협으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게 하였다. 결국 공비들은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번 금문 반공보위전에서 우리는 전술적으로는 피동적으로 응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략적으로는 이미 주동적인 위치를 점하였다. 그 결과 공비들은 무력으로는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알고 부득이 정치적 사기술을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공비들은 군사적인 면에서는 적극적인 보충을 통해 재침공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는 군사전장에서 정치전장으로 전투의 중심을 옮겨 중·미 합작을 분화시키려는 망상을 갖고 있다. 우리 3군의 사기를 약화시키려는 공비들의 기도도 군사전장에서 이루지 못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다.

 

중화민국 47(1958) 국경일담화

 

 

 

19581010

 

 

 

오늘은 우리 중화민국 47년 국경기념일인 쌍십절입니다. 마침 국경기념일을 앞두고 金門島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우리 국군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국경기념일인 오늘 본인은 중화민국을 창조하신 國父와 선열들의 영광된 사적을 기리면서, 동시에 金門·馬祖 전선에서 국토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軍民 동포들의 충용하고 장렬한 투쟁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자리를 빌려 이번 금문도 전투가 혁명의 성패와 민족의 영욕에 미친 중대한 영향과 그 상관관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 금문도 반공 보위전은 국가와 민족의 전도에 심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번 공비와의 전투에서 금문도 전체 군민들은 국가의 영토와 주권을 지켜 내었습니다. 그보다도 더욱 큰 의의는 인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헌법이 부여한 권리를 지켜 내었다는 것입니다. 금문도의 전체 군민은 이번 반공 보위전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로 무장하여 공비들을 물리쳤습니다. 이들의 투쟁은 생존과 자유를 얻기 위해 공산주의 극권통치에 항거하고 있는 대륙 동포들에게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전제지배에 저항하고 폭력에 굴복하지 않는 중화민족의 전통 정신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금문 보위전은 戰場의 특수함, 경이로운 전투성과 등 여러 방면에서 세계 전쟁사에서 특별한 사례로 기록될 것입니다. 이번 전투에서 우리 중화민족은 사악한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 끝까지 투쟁하는 분투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마도 소련제국주의자와 그 하수인인 공비집단은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우리 3군 용사들이 보여준 반공혁명의 정신, 치욕을 씻고 복수를 이루리라는 결심이 이번 전투를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었습니다. 우리 용사들의 영용한 투쟁은 땅을 흔들고 귀신을 감동시킬만한 것이었습니다. 이번 반공 보위전 승리로 우리는 중화민족 부흥의 기초를 튼튼히 세웠을 뿐만 아니라 臺灣을 태평양을 밝게 비추는 등대로 자리 잡게 하였습니다. 이번 전투를 통해 우리는 중국 5천년 역사전통의 민족대의를 분명히 드러내 보였습니다. 60년간 지속해온 국민혁명을 통해 배양된 애국정신은 어떠한 어려움과 시련이 있어도 흔들림이 없을 것입니다. 이번 전투를 통해 우리나라의 위상은 더욱 굳건해 졌습니다.

 

 

 

. 금문 반공 보위전이 아시아 민족과 태평양의 안위에 미치는 상관관계입니다. 공비들은 823일부터 105일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금문도에 포격을 가했습니다. 적 해군과 공군은 해상과 공중을 봉쇄하여 금문도에 대한 후방지원을 단절시키고자 하였습니다. 13만 군민을 孤島에 가둬두고 질식시키려던 공비들의 악랄한 계책은 결국 철저히 분쇄되었습니다. 포탄이 비 오듯 쏟아지고 사방이 포위된 상황에서도, 군인과 민간인을 가릴 것 없이 침착하게 응전하는 한편 운수와 보급의 방책을 마련한 결과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6주간에 걸친 악전고투 끝에 공비들의 금문도 침공을 막아낼 수 있었고, 그리하여 금문도를 발판 삼아 동남아를 침략하려던 적들의 야심을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금문도 침공에 실패함으로써 공비들의 약점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이번 반공 보위전 승리의 가장 두드러지는 성과는 태평양 서안 최전방에 튼튼한 방어선을 구축하였다는 부분일 것입니다. 이로써 공비집단의 무장침략을 대륙의 변연에 한정시켜 대만해협으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결국 공비들은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금문 반공보위전에서 우리는 전술적으로는 피동적으로 응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략적으로는 이미 주동적인 위치를 점하였습니다. 그 결과 공비들은 무력으로는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알고 부득이 정치적 사기술을 동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공비들은 군사적인 면에서는 적극적인 보충을 통해 재침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 한편으로는 군사전장에서 정치전장으로 전투의 중심을 옮겨 중·미 합작을 분화시키려는 망상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3군의 사기를 약화시키려는 공비들의 기도도 군사전장에서 이루지 못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입니다.

 

 

 

공비들은 바르샤바담판에서 농간을 부리려다 실패하자 향후 30년간 정전상태를 유지하자는 기만적 정치공세를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과 미국 두 맹방은 공동반공의 목적을 위해 이번 대만해협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긴밀하게 합작하였습니다. 양국의 노력과 분투는 遠東의 전체 국면을 안정시키고 태평양의 안전을 보장하는 효과를 발휘하였습니다. 이는 금문도 침공을 도발한 공산집단의 계산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잘못된 판단과 행동으로 인하여 공산집단은 참패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 금문 반공 보위전은 자유세계의 안전과 평화에 공헌하였습니다. 공산제국주의자들은 이미 아시아의 심장부를 장악하였,고 유럽대륙에는 적수가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대륙을 발판 삼아 해양까지 손아귀에 넣으려는 야심을 가지게 되었고, 태평양 서안의 전략요충인 臺灣·金門·澎湖·馬祖를 일차적인 침략 목표로 정하였습니다. 결국 공산집단이 대만해협을 전장으로 만든 근본적인 목적은 서태평양을 자신들이 독점하는 內海로 만들고, 동반구 장악의 야심을 완성하는데 있었습니다. 공산집단이 내놓은 군사적, 정치적 술책은 그것이 폭력적이든 평화적이든 모두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공산집단은 이후 더욱 대규모의 군사행동을 자행하고 전쟁을 확대시킬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지금 적과 우리의 군사형세를 비교하여 보면, 적들의 도발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겁먹은 적들이 도발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만약 감히 전쟁을 도발하고 확대한다면, 적들은 자유세계 반침략진선의 일치된 행동에 가로막혀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로 공비집단의 멸망은 가속화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금문도 보위전 승리는 향후 더 이상 무모한 행동에 나서지 못하도록 공비들에게 보내는 경고장이었습니다. 공비들이 내걸었던 금문·마조를 점령하고 대만을 해방시키자는 구호를 철저히 파괴한 쾌거였습니다.

 

 

 

만약 공산집단이 마지막 발악하는 심정으로 전쟁을 확대한다면, 이는 대륙 동포들이 반공혁명을 일으킬 절호의 기회로 작용할 것입니다. 이 기회를 빌려 전체 대륙 동포들에게 분명한 사실 한 가지를 알려 드릴까 합니다. 공비들이 전력을 기울여 발동한 금문도 침공작전은 완전히 실패하였습니다. 지금 공비들은 진퇴유곡의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막다른 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지난 9년간 대륙 동포들이 압박과 착취, 노역과 숙청으로 고통 받았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청천백일을 다시 마주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모두 전쟁은 혁명의 산파라고 외칩니다. 대만해협의 전쟁이 장기간 계속되고 대륙의 반공혁명이 신속히 흥기하여 상호 호응하는 때야말로 반공복국사업이 본격적으로 개시될 시기가 될 것입니다. 이때가 되면 간악한 주더(朱德마오쩌둥(毛澤東) 등 공비집단도 민족대의 앞에 무릎 꿇게 될 것입니다.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들도 이번 금문 반공 보위전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을 뿐만 아니라 무한한 기대와 희망을 가졌을 것입니다. 지난 9년간 여러분들의 고향은 공비들에게 유린되고, 골육과 친지들은 갖은 압박과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나라와 고향을 구하기 위해 노력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군민 동포 여러분! 대륙의 모든 동포들은 反攻의 전우입니다. 전 세계의 모든 자유인사들은 반공의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이번 금문 반공 보위전을 통해 우리는 공산주의 극권통치에 맞서 국가의 독립과 인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자립자강해야 한다는 사실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립해야만 독립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강한 뒤 비로소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스스로를 도와야 남이 나를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반공복국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전국 동포들이 한마음이 되어 금문도에서 보여준 반공정신을 발양해야 합니다. 금문도의 군민이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보여주었던 투쟁정신으로 무장하여 공비들과 끝까지 박투를 벌여야 합니다. 피와 땀의 대가를 치러야만 사악한 공산세력을 소탕하고 인민의 자유와 국가의 독립을 얻을 수 있습니다.

 

 

 

동포 여러분! 우리 모두 금문도의 군민을 모범으로 삼아 어깨를 펴고 보조를 맞추어 일치단결하여 분투합시다. 우리는 이미 일회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장차 대만해협 전역에서 전개될 전쟁의 이회전에서도 분명 승리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회전에서 승리한 뒤 대륙으로의 반공을 계속하여 동포들을 구원하고 복국과 건국의 공동사업을 완성합시다. 이번 전투의 결과는 반공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전면적인 준비와 장기간의 분투가 필요함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곧 우리 모두가 장기분투의 결심을 가질 때 비로소 대만해협의 전쟁과 대륙의 반공혁명이 결합되어 반공복국의 완전한 역량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장기전을 통해 공비의 전력을 소모시킬 수 있고 괴뢰조직을 와해시킬 수 있습니다. 간악한 공비집단을 소멸시키고 삼민주의를 실현합시다. 대륙을 광복하고 산하를 되찾아 민국을 창조하신 국부와 국민혁명을 위해 몸바친 선열들의 영혼을 위로합시다.

 

 

 

이제 우리 다 함께 외칩시다:

 

중화민국 만세!

 

삼민주의 만세!

 

반공전쟁 승리 만세!

 

국민혁명 성공 만세!

 

 

 

出典 : 『總統蔣公思想言論總集』 卷33 書告, 208-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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