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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한승훈 | 종교학자·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최근 화제가 됐던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비상대책위원장의 대국민 호소문에는 이른바 586용퇴론이나 팬덤정치 비판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그것은 “15년째 지키지 않은”, 평등법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는 선언이었다. 그가 언급한 활동가들의 단식농성이 얼마 전 끝났다. 평등법 혹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오랜 싸움의 일환이었다. 이 법을 신속히 처리해달라는 대국회 요구안이 수없이 제출됐지만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개혁적”인 제1야당이 압도적인 의회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약속을 지킬 절호의 기회는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다.
반면 혐오세력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23일 국민의힘 기독인회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들은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이 개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완전히 박탈하는 “개자완박”의 악법이라고 주장했다. 동성애와 성소수자에 반대하는 개인의 자유가 훼손되고 “정상적인 삶을 추구하는 대다수 사람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이 정말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정도로 강력한지는 일단 논외로 하자. 이 법은 정상적 다수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이들이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헌법 11조를 현실의 제도로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성소수자에 반대하는 언행이 종교의 자유에 속하는지도 일단 논외로 하자. 주목할 것은 공론의 자리에서 당당하게 차별할 권리가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교 경전은 수백년 동안 축적된 이질적인 문서들의 모음이다. 여기에는 차별금지법을 통해 예방하고자 하는 거의 모든 차별 요인(성별, 장애, 종교, 나이, 출신 민족, 건강 상태, 성적 지향, 사회적 신분 등)을 정당화할 수 있는 구절들이 있다. 한편 그 모든 고대적 차별들을 극복하고 인간으로서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환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등장한다. 예수가 대표적이다.
보수적 교리를 정당화할 수 있는 몇몇 구절을 선택해서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원리주의적 종교들은 현대 문명이 추구하는 자유와 평등의 확대에 반동적 입장에 선다. 그러나 근대적인 종교 자유는 개인의 신념에 따라 스스로 특정 공동체의 율법이나 계율에 속박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준 것일 뿐이다. 그것을 타인이나 사회 일반에 강요하는 일은 월권이자 폭력이다.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자유란 다수에 의해 배제되거나 모욕받거나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아야 할 소수자들의 권리 쪽이다. 이 최소한의 자유주의적 합의를 거부하는 정치인들이 여야 모두에 포진하고 있는 것은 우려스럽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세속사회의 율법을 전수해야 할 교육 영역이다. 지방선거 기간 동안 몇몇 교육감 후보들은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고 전통의 미덕을 해치는” 성평등과 학생인권 교육을 축소, 폐지해야 한다고 나섰다. 경남교육감 선거 토론에서는 “아이들에게 동성애를 하면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과 “동성애를 하는 아이‘조차도’ 교육에서 배제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충돌했다. 양쪽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명백한 차별, 혐오 발언이다.
그런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 축소되었던 퀴어문화축제가 재개된다고 한다. 이전까지 필자는 해마다 초등학생 딸과 함께 지역 퀴어축제에 방문하곤 했다. 하도 음란하다 문란하다 말해대서 걱정도 됐지만 기우였다. 야한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면 텔레비전 시청을 제한하는 편이 낫다. 정작 아이에게 보여주기 민망한 것은 행사장 앞에서 벌어지는 혐오시위였다. 십자가 아래에서 “에이즈 걸려라”느니 “똥꼬”가 어쩌니 하는 저주와 욕설이 난무하는 시위군중 속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섞여 있었다. 저 사람들은 뭐 하는 거냐는 저학년 어린이의 질문에 2000년 전에도 평등과 사랑을 외치며 축제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저런 사람들이 괴롭히고 방해했다는 즉석 복음 이야기를 해주었다. 마침 축제 장소에서는 성소수자에게 연대하는 그리스도인 모임인 ‘무지개예수’의 예배가 진행 중이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이 어느 편이었는지를 쉽게 이해시킬 수 있었다. 아이도 꽤 자랐으니 올해는 좀 더 깊은 토론도 가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