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통령 동경도착 후 성명서를 발표
이승만
1953년
이대통령(李大統領) 동경도착(東京到着) 후(後) 성명서(聲明書)를 발표(發表)
금일(今日) 이대통령(李大統領)께서는 동경(東京)에 도착(到着)하신 후(後) 다음과 같은 성명서(聲明書)를 발표(發表)하시었다.
몇 일전(日前)에 발표(發表)한 바와 같이 나의 금반(今般) 동경(東京) 방문(訪問)은 약(約) 한 달 전(前)부터 우리 내외(內外)를 초청(招請)한 크라-크장군(將軍) 부처(夫妻)를 사사(私私)로히 찾어 볼려는데 있는 것이다. 좀더 일즉이 떠나고 싶었지만 시간(時間)이 상치(相値)되여 떠나지 못하던 차(次) 이번 신년(新年)을 당(當)하여 몇 일(日) 시간(時間)의 여유(餘裕)를 얻어 이와 같이 오게 된 것을 기뿌게 생각(生覺)하는 바이다. 이 전(前)에 맥아더장군(將軍)을 방문(訪問)하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나는 그저 친구(親舊)들과 잠시(暫時) 조용한 시간(時間)을 지낼랴는 것이며 다시 거듭 명백(明白)히 말하고 십흔 것은 금반(今般) 여행(旅行)의 목적(目的)은 공표(公表)된 것 이외(以外)에 아모 것도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누구에게나 편감(偏感)을 갖인 바 없으며 한일양국관계(韓日兩國關係)에 관(關)한 사정(事情)을 듣고자 하는이나 또는 어떠한 문제(問題)를 명백(明白)히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기꺼히 맞나볼 생각(生覺)이다.
동경(東京)의 언론계인사(言論界人士)들 중(中)에는 본인(本人)이 지난번 당지(當地)를 방문(訪問)하였을 때 기자회견(記者會見) 석상(席上)에서 한 말을 기억(記憶)할 것이다. 나는 그 때 말하기를 나를 일본(日本)의 친구(親舊)라고 생각(生覺)하는 사람은 없는 줄아나 한국(韓國)과 일본(日本) 양국(兩國)은 왕사(往事)를 용서(容恕)하고 잊어버림으로써 양국(兩國)을 위협(威脅)하는 공산세력(共産勢力)에 대항(對抗)하여 결속(結束)하여야 한다고 하였든 것이다. 이 자리에서 솔직(率直)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韓國)은 역사상(歷史上) 침략자(侵略者)가 되어 본 일이 없으며 더욱 일본(日本)에 대(對)하여 국제적(國際的)인 부정(不正)을 행(行)하였다고 비난(非難)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어떤 사람을 비방(誹謗)할려는 것이 아니며 만일(萬一) 일본(日本)이 우리와 손을 잡고 일할려고 드는 한(限) 우리는 언제나 일본(日本)과 맞날 용의(用意)가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데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精神)아래서 한국정부(韓國政府)는 동경(東京)에 대표(代表)를 파견(派遣)하여 일본정부(日本政府)에 대(對)하여 외교교섭(外交交涉)을 개시(開始)할 것을 요청(要請)하는 동시(同時)에 양국간(兩國間)에 항상(恒常) 알력(軋轢)과 충돌(衝突)의 원인(原因)이 되여 온 미해결(未解決) 문제(問題)의 해결(解決)을 기도(企圖)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不幸)이도 이 회담(會談)은 중지(中止)되였으며 지금 우리는 일본정부(日本政府)가 동(同) 교섭(交涉)을 재개(再開)함이 편리(便利)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바라는 터이다. 몇몇 신문(新聞)에 이번 내가 일본(日本)에 온 것은 이 교섭재개문제(交涉再開問題)를 위한 것이라고 전(傳)해지고 있었으나 이는 전(全)혀 당(當)치안는 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