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총통 선거, 양안관계에 미칠 영향은?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대중국 구상 모두 다른 후보들, 타이완은 어디로
2024년 1월 13일은 타이완의 16대 총통, 부총통을 선출할 선거일이다. 이번 선거는 제11대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와 동시에 치러진다. 2020년 연임에 성공한 현 총통 차이잉원(蔡英文)은 '총통과 부총통의 임기는 4년이며,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다'는 헌법의 규정에 의거하여 출마할 수 없다.
타이완 총통 선거는 타이완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일 뿐만 아니라 중국정부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과거 독립성향의 리덩후이(李登輝)가 총통에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만해협에 전쟁 위기를 고조시킨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불리할 것으로 점쳐 졌던 리덩후이가 상대 후보보다 30% 이상 득표해 압승을 거두었다.
과거 한 차례 실패의 경험을 거울삼아 중국은 이번 타이완 총통 선거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자제하고 있다. 중국은 당연히 독립성향을 지닌 후보보다는 친중적인 후보의 당선을 바라고 있다. 이에 타이완의 여론조사기관과 홍보회사를 움직여 친중적 후보에게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총통 선거는 4파전으로 전개되고 있다. 집권당인 민주진보당은 현임 부총통이자 당 주석인 라이칭더(賴清德)를 공식 후보로 내세웠다. 최대 야당인 중국국민당을 대표해서는 타이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신베이시(新北市)의 현임 시장 허우유이(侯友宜)가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 2019년 창당해 역사가 일천한 타이완민중당에서는 두 차례 타이베이시장을 지낸 커원저(柯文哲)가 후보로 나선다.
앞의 세 사람이 정치인 출신이고 각기 소속정당을 대표하여 출마한 것과는 달리, 야권에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단독 출마자가 있다. 아이폰을 비롯한 애플의 주요 제품을 생산하는 폭스콘의 모회사인 홍하이정밀(鴻海精密) 창업자 궈타이밍(郭台銘)이다.
궈타이밍은 2020년 총통 선거 시 중국국민당 당내 경선에서 탈락해 불출마했다. 이번에도 정당의 추천을 받지 못했지만, 4년 전과는 달리 총통 선거를 끝까지 완주할 것이라며 출사표를 던졌다.
타이완 독립 및 양안관계에 대한 총통 후보자들의 입장과 견해는 그들의 정치적 배경에 따라 같은 면과 다른 면을 보이고 있다. 민주진보당 후보인 라이칭더는 타이완 독립을 주장하지만, 중국과의 군사적 대항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10년 전 상하이를 방문했을 때 라이칭더는 타이완 독립은 민주진보당의 일관된 주장이자 타이완 사회의 공식(共識)임을 강조했다.
케이팝(K-pop) 그룹 트와이스 멤버인 타이완 출신의 저우쯔위(周子瑜)가 2015년 모 방송국 예능프로그램에서 중화민국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들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당시 라이칭더는 "타이완 독립분자들은 자신들의 '국기'가 따로 있다.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드는 사람은 대만독립분자가 아니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근자에도 그는 여전히 타이완 독립 주장은 변함이 없으며 자신의 입장은 '친중애대(親中愛臺)'임을 강조했다.
행정원장 재임 시 입법원에서 행한 공개답변에서는 자신을 '타이완 독립을 주장하는 정치인'이라고 자칭했다. 중화민국 역사상 입법원에서 공개적으로 타이완 독립을 주장한 최초의 행정원장으로 기록될 정도로 라이칭더는 독립성향이 강한 인물이다.
민주진보당 총통 후보로 정식 제명(提名)된 뒤인 올해 8월, 텔레비전 대담 프로에 출연한 라이칭더는 "타이완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라이칭더의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게 점쳐지고 있는 현재, 중국은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국민당을 대표한 허우유이, 사업 수익의 대부분을 중국대륙에 있는 공장에서 내고 있는 궈타이밍이 공공연히 친중적인 언행을 서슴지 않는 반면 양안문제에 대한 커원저의 태도는 애매모호한 면이 없지 않다.
2015년 미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커원저는 일국양제(一國兩制) 대신 양국일제(兩國一制)의 채택을 주장했다. 양안이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문화교류를 심화시켜 문화차이를 감소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주장이었다.
양안이 민주, 자유, 법치, 인권과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함으로써 합작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양제가 아닌 일제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타이베이시장 시절, "타이완은 주권 독립 국가인가?"라는 시의원의 질문에 커원저는 "독립국이기는 하지만 정상적인 나라는 아니다"고 답했다. "타이완은 중국의 일부인가?"라는 또 다른 질문에는 "현재로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가 아니다"고 답했다.
양안문제에 대한 각 후보자들의 입장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9·2공식(共識)'의 수용 여부이다. 1992년, 대만해협 양안사무 처리를 위해 설립된 중국의 대만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와 타이완의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 대표가 홍콩에서 회합을 가졌다. 쌍방 대표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뜻을 같이 했다. 다만 공식의 내재적 함의에 대해서는 명확히 표현하지 않아 해석의 공간이 상당히 모호했다. 그렇기에 당시 해기회 회장이던 꾸전푸(辜振甫)는 이를 '9·2양해'라 표현했다.
타이완 방면에서는 '하나의 중국'은 당연히 중화민국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중국 측은 중화민국정권은 홍콩이나 마카오와 마찬가지로 장래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될 것이며, 그렇기에 중국이 곧 '하나의 중국'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해석상의 모호함이 없지 않았지만 이후 중국의 관방문서에는 '9·2공식'을 통해 전 세계가 모두 중화인민공화국이 곧 중국임을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곧 중국이라는 주장에 반발한 리덩후이는 양안관계는 특수한 국가와 국가의 관계라는 '양국론'을 들고 나왔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법리적 원칙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양국론은 중화민국 치권의 존재공간을 확보하는 논리적 근거로 작용했다.
리덩후이가 양국론을 들고 나오자 중국은 타이완과 모든 교류를 중단시켰다. 2000년 천수이볜(陳水扁)이 총통에 당선된 뒤 친중파 인사들은 '9·2공식'의 공식적인 채용을 요구했다.
이 무렵 해협양안사무를 전담한 대륙위원회 주임 쑤치(蘇起)가 처음으로 9·2공식과 '하나의 중국, 각자 표술'을 연계시키면서 타이완 방면에서도 처음으로 9·2공식이 관방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주장은 친중파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후일 중국국민당의 당강(黨綱)에 포함되었다. 반면 민주진보당을 비롯한 타이완 독립파는 종래 9·2공식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타이완 독립을 주창해온 민주진보당 출신의 라이칭더는 당연히 9·2공식을 접수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허우유이와 궈타이밍은 출마 전부터 9·2공식을 인정하고, 이것이 대만해협의 현상을 유지할 방도임을 강조했다. 애매한 태도를 취했던 커원저는 근자에 이르러 9·2공식을 인정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은 과거와 같은 군사적 위협이 아닌 여론 조작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타이완 총통선거에 개입을 기도하고 있다. 타이완 독립파가 아닌 친중파의 당선을 바라고 있겠지만, 현재까지의 상황은 중국의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판세가 전개되고 있다. 타이완 총통 선거의 결과가 양안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