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장군 추도식 추도사
이승만
1964년 4월 11일
우리 한국민(韓國民)의 가슴 속에 영원(永遠)한 벗으로 아로새겨진 「맥아더」장군(將軍)은 다시 올 수 없는 유명(幽冥)의 길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이 세기(世紀)의 거성(巨星)인 장군(將軍)의 장서(長逝)에 남다른 애석(哀惜)함과 충격(衝擊)을 금(禁)할 길 없으며, 온 국민(國民)의 한결같은 슬픔 속에 경건(敬虔)히 머리 숙여 삼가 명복(冥福)을 비는 바입니다.
이제 영광(榮光)속에 사라져간 노병(老兵)의 위대(偉大)한 최후(最後)를 추념(追念)하는 이 애도(哀悼)의 광장(廣場)에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한국(韓國)을 이해(理解)해 주었고, 그 누구보다도 한국(韓國)의 기구(崎嶇)한 운명(運命)에 동정(同情)을 아끼지 않았던 장군(將軍)이, 그 전(前) 날 한국(韓國)을 위(爲)해서 남긴 불멸(不滅)의 업적(業績)을 추모(追慕)하려는 것입니다.
청운(靑雲)의 웅지(雄志)를 군복(軍服)에 담고 그의 사랑하는 조국수호(祖國守護)의 성업(聖業)에 투신(投身)한 이후(以後), 반세기(半世紀) 생사(生死)를 초월(超越)한 파란(波蘭) 많은 생애(生涯)를 통(通)하여 장군(將軍)은 오직 독재(獨裁)와 착취(搾取)의 검은 먹구름 속에서 인류(人類)를 구출(救出)해 냄에 그의 모든 것을 바쳐 왔습니다.
일찍이 구라파(歐羅巴)의 전선(戰線)에서 태평양(太平洋)의 전역(全域)에 이르기까지, 장군(將軍)은 군국주의(軍國主義)와 「파시즘」의 침공(侵攻)을 격파(擊破)하여 민주주의(民主主義)의 승리(勝利)를 가져 왔고, 동북아세아대륙(東北亞細亞大陸)으로부터 뻗어 내린 붉은 공산마수(共産魔手)로부터는 우리 조국(祖國)의 자유(自由)와 독립(獨立)을 수호(守護)함으로써 극동(極東)의 평화(平和)와 인류(人類)의 자유(自由)를 위(爲)한 불후(不朽)의 무훈(武勳)을 남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승리(勝利)의 영예(榮譽)로서 연면(連綿)히 이어진 기나긴 군인생활(軍人生活)에서 한국(韓國)은 장군(將軍)의 마지막 전승지(全勝地)였으며, 고요히 숨을 거두기까지도 정녕 잊혀 지지 않았던 애석(哀惜)한 추억(追憶)을 남겼던 곳임을 우리는 회상(回想)치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6·25(六·二五)의 돌발적(突發的) 사태(事態)가 발생(發生)하기 2년전(二年前), 바로 이 광장(廣場)에서 신생(新生) 한국(韓國)의 독립(獨立)을 경축(慶祝)하던 그날 그 뜻 깊은 제전(祭典)에서, 장군(將軍)은 「인위적(人爲的)인 장벽(障壁)과 분할(分割)」로 정의(正義)의 실현(實現)이 조지(阻止)된 우리의 현실(現實)을 통탄(痛嘆)히 여기면서, 이 장벽(障壁)은 반드시 파멸(破滅)될 것이며 우리가 「자유(自由)로운 국민(國民)으로 통일(統一)하는 것을 막을 것이란 천하(天下)에 아무것도 없으리라」는 격려(激勵)로써 국토통일(國土統一)의 희망(希望)과 용기(勇氣)를 일깨워 주었던 것입니다. 이 장군(將軍)의 지대(至大)한 관심(關心)과 구원(救援)의 결의(決意)는 6ㆍ25(六·二五)의 공산침략(共産侵略)에 즈음하여 용기(勇氣)있는 결단(決斷)과 탁월(卓越)한 전략(戰略)으로 즉각적(卽刻的)인 구현(俱現)을 보는 듯하였으나, 그가 그토록 다짐하고 우리가 그토록 희원(希願)하던 통일(統一)의 성업(聖業)은 이룩되지 못한 채 인위적(人爲的) 장벽(障壁)은 걷혀지지 않고 한국(韓國)의 비극(悲劇)은 광명(光明)을 못 본 채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공산주의(共産主義)와의 대결(對決)에서는 승리(勝利)가 있을 뿐이라는 장군(將軍)의 굳은 신념(信念)과 대담(大膽)한 전략(戰略) 앞에 통일(統一)의 성업(盛業)이 이룩될 수 있는 새로운 계기(契機)가 마련 될 수 있었으나, 이 다시없는 기회(機會)는 끝내 결실(結實)을 보지 못한 채 장군(將軍)은 50성상(五十星霜) 군인(軍人)의 길에 매듭짓고 한국(韓國)을 떠났습니다.
이제 위엄(威嚴)있는 풍모(風貌)와 탁월(卓越)한 지략(智略)과 그리고 무인(武人)의 신의(信義)로써 추앙(推仰)받던 한국(韓國)의 은인(恩人)은 영영(永永) 숨을 거두고야 말았습니다. 한국(韓國)을 도우려고 부단(不斷)히 진력(盡力)하던 세기(世紀)의 영웅(英雄)은 갔고, 통일(統一)의 그날을 여생(餘生)의 염원(念願)으로 삼던 우리의 위대(偉大)한 벗은 한국(韓國)을 위(爲)한 천추(千秋)의 한(恨)을 품은 채 그의 사랑하는 조국(祖國)의 품에 잠들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리고 우리가 통일(統一)의 다시없는 기회(機會)를 일실(逸失)한 그 통탄(痛嘆)스러운 심회(心懷)는 결(決)코 우리에게 실망(失望)과 좌절(挫折)과 그리고 체념(諦念)을 안겨다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장군(將軍)이 말했듯이 「한국(韓國) 국민(國民)은 너무나 위대(偉大)한 선조(先祖)의 후손(後孫)」이기 때문입니다. 「외래(外來)의 분할(分割)의 철학(哲學)에 굴(屈)하지 않을」 강인(强靭)한 민족(民族)이기 때문이며, 희망(希望)과 자신(自信)을 잃지 않고 불굴(不屈)의 의지(意志) 속에 재기(再起)하는 자유민(自由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장군(將軍)의 유훈(遺訓) 속에 승공(勝共)의 결의(決意)를 되새기고 국토통일(國土統一)의 민족적(民族的) 비원(悲願)을 달성(達成)함에 최후(最後)의 승리(勝利)를 굳게 다짐하는 바입니다.
우리의 국난(國難)을 구출(救出)한 위대(偉大)한 노병(老兵)에게 겨레의 이름으로 불멸(不滅)의 찬가(讚歌)를 바치며 그의 조국(祖國)과 가족(家族)의 앞날에 하나님의 가호(加護)를 빕니다.
승리(勝利)와 영예(榮譽) 속에, 그리고 찬연(燦然)한 위훈(偉勳)과 존경(尊敬) 속에 숨져간 장군(將軍)이여! 고이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