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순방에 대한 라디오 및 텔레비전 연설
1960년 6월 27일
[오후 7시 30분 대통령실에서 발표]
국민 여러분:
저는 이제 막 극동지역을 순방하고 워싱턴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순방에선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고 오늘 저녁을 빌어 사실관계 이해를 돕기 위한 배경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순방 중 관찰하고 개인적으로 몇 가지 결론 내린 점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필리핀, 대만, 한국 그리고 오키나와와 미국의 관계가 강화되었습니다.
두 번째, 극동지역 국가들은 이번 순방 시기를 활용하여 그들과 미국 국민들 사이의 유서 깊고 열렬한 우정을 드러냈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모든 미국 국민들께서도 그들의 따뜻한 표현에 기쁨을 느끼셨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세 번째, 미일 상호방위조약의 비준은 자유 진영의 주요한 승리와 국제 공산진영의 패배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제 이번 순방의 배경과 그 외 세계 평화와 관련된 여러 일들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이번 순방은 연이은 일정으로 계획되었으며, 이를 통해 유럽의 27여 개국, 중동, 남아시아, 북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 그리고 극동을 포함하여 거의 전 세계를 방문하였습니다. 제가 지난 10개월 동안 방문한 국가들의 인구수만 합치더라도 10억이 넘습니다.
이 모든 방문 외교가 우리 정부의 전반적인 외교 관계와 어떠한 상관이 있는지 알기 위해선 지금은 소천하신 덜레스 국무장관과 제가 대통령 취임 준비를 하며 세계정세를 가늠하던 당시인 1953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당시 우리는 세계 2차대전 이후로 전쟁의 혼란스러운 여파와 우리의 군축 의지를 이용하여 공산권이 아시아와 동유럽에서 지속적으로 침략과 전복 시도를 자행하고 있다는 정황을 확인했습니다. 그들은 수백만 자유민들의 삶을 어지럽혔고, 생활수준의 하락과 쇠진한 경제를 야기하였습니다. 중국과 중국의 5억 인구는 자유세계로부터 빼앗겼습니다. 한국의 전쟁은, 당시의 교착상태로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부터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1953년쯤엔 문명을 멸망시킬 수 있는 원자력 무기 비축이 국제 분쟁에서의 무력 분쟁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명백해졌습니다. 1953년 즈음, 문명을 멸망시킬 수 있는 원자력 무기의 지속된 비축이 국제 분쟁에서 무력 대응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명백해졌습니다. 오직 지속적인 평화와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법의 지배 만이 인류를 절멸의 길에서 구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들을 기반으로 우리는 현재 동시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고, 이것은 유엔 헌장의 이상에 입각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신념을 지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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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그랬듯이, 우리는 항상 미국이 평화를 향한 위대한 소망을 품고 있고, 진실되고 성실한 자세로 협상에 임하고자 하는 그 어떤 누구와도 협상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는 것을 세상 앞에서 끊임없이 그리고 힘차게 밝혀야 합니다. 오늘 아침에 제네바에서 열린 10개국 군축회의에서 소련 측 대표단이 유감스럽게도 자리를 박차고 나간 상황과 같은 도전들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말씀드린 태도를 견지할 것입니다. 하지만, 상호 군축 협상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저희의 가장 높은 우선 순위가 자국의 안보를 강하고, 현대적이고, 경계태세로 유지하는 것임을 처음부터 분명히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심각한 문제가 예기치 않게 발생할 수 있는 지역들을 확인하였고, 해당 지역들의 불안 요인을 해결하고 안정을 도모하고자 의견을 모았습니다. 많은 지역들의 경우 우리 우호국들과의 협력을 통해 마찰의 원인들을 제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처음부터 우방국들의 관련 인사들과 빈번히 접촉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또한 우리는 소련 정부와 교섭을 추구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슷한 노력의 일환으로 피플투피플 프로그램(People-to-people program)이라고 불리게 된 국제관계에서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조직을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이런 목표들과 아울러 우리는 우방국들과 함께 공동 안보와 생활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계획들을 활성화하고자 더 나은 협력 방식을 구상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공동 안보 프로그램은 예나 지금이나 협력을 효과적으로 해주는 핵심 요소입니다.
미국의 평화를 향한 의지를 세계에 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여러 정책 강령과 소련과의 건설적인 대화를 위한 일련의 구체적인 제안을 구상했습니다.
일찍이 1953년 4월에 저는 소련과의 군축 회의를 제안한 바 있고, 서로 납득할 수 있는 군축을 통해 확보된 예산의 상당 부분을 저개발국가들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활용하자고 미국 사회에 요청할 것을 약속했었습니다.
같은 해 말에 저는 유엔 총회 앞에서 원자학적 발견들을 평화로운 목적에 한해서만 이용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19개월 뒤 제네바에서는 상호 사찰을 위한 영공 개방 방식을 제안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덜레스 국무장관은 쉼 없이 우방국들을 방문하고 공동 안보 역량을 강화하는 일에 끊임없이 착수했었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여러 국가수반들을 미국에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시간 동안 우리 부통령과 그 외 여러 분야의 대표들이 동분서주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정부나 국가의 지도자들이 초대를 수락한다는 답장을 빠르게 보내왔습니다. 지난 7년 반의 시간 동안 70명 이상의 국가 원수나 총리가 (그들 중 일부는 여러 번)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씩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이는 전례 없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지도자들도 가까운 시일에 방문할 예정입니다. 내일은 태국의 국왕 폐화와 여왕 폐하, 이후 금년 내에는 일본의 황태자와 황태자비 그리고 덴마크의 국왕 폐화와 영왕 폐하가 워싱턴에 방문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실 예정입니다.
저는 일찍이 미국과 우리의 삶의 모습을 보러 예방해 주신 지도자분들의 국가들로부터 급속한 답방의 초대를 받아왔습니다.
수개월 전, 우리는 좋은 기회로 판단되는 몇몇 초대에 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허터 국무장관은 처음에는 차관으로서 그리고 이후에는 장관으로서 격하게 이에 동의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저의 해외순방이 다른 성공적인 계획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27개국으로의 여정들로부터 빚어낸 높은 가치는 국내외적으로 분명했습니다. 전 세계에 미국의 평화와 정의를 향한 헌신, 협력 계획을 통해 자유를 지탱하고 자유세계의 안보를 강화시킬 결의,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희생할 준비 자세를 강조하고 또 재차 강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물론 방문을 진행하면서 국가수반들과 귀중한 대화는 물론, 일반 국민들 사이의 이해 또한 도모하였습니다.
그러나 소위 정상회담과 나토 정상회의를 제외하면, 저의 모든 방문들은 특정한 협정만을 체결하기 위한 외교 임무로서 계획되고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이 논의들은 언제까지나 중요한 현안들을 다뤘지만 말입니다.
저는 국가의 지도자들이 나중에 종종, 능하다면 비공식 자리에서, 다양한 주제와 원칙에 대해 유익한 대화를 하기 위해 만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이전 전통적인 외교 방식으로 준비된 협정에 대한 엄숙한 승인을 내리기 위해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 정상들의 회담은 국제 협약의 구체적인 조항들을 발전시키기 위한 그리 효과적인 장치는 아니고, 우리 정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국가의 수장이 몸소 방문하면서 보이는 호의는 종종 평범한 외교 회담을 뛰어넘는 좋은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는 더 우호적인 분위기와 국민들 간의 상호 신뢰를 조성해 왔습니다. 직접 방문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자유에 헌신하는 국가들을 더욱더 효과적으로 가까워지게 한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국가 간 방문 외교가 공산제국주의를 차단하는 데 있어서 자유 진영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결론이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 나왔다는 것이 자명해 보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를 막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필리핀, 오키나와, 한국 그리고 일본을 방문하는 것을 선전을 통해 격렬히 반대했었습니다.
지난달 파리에서 그들은 저를 맞이하는 게 곤란하다고 말하면 되는 것을 되려 제가 받은 소련 방문 초대 취소에 대한 정교한 거짓 명분을 개진하였습니다.
그들은 북평(북경)의 당원들을 동원하여 온갖 수작을 부려서 도쿄에 혼란을 만들고 일본 정부는 당시 상황을 고려하여 저의 자매 민주주의국가 일본 방문을 취소해야만 했었습니다.
이러한 혼란은 미국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의 잘못에 대해 우리 자신을 탓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좌우지간 공산주의자들은 공산주의자들답게 움직일 뿐입니다.
이러한 방문들의 가치를 보여주는 하나의 확실한 척도는 공산주의자들이 이에 대해 얼마나 강하게 반대하는가입니다.
일본에 관하여서는 폭력적이고 무질서한 소수의 만행을 불구하고, 절대다수의 일본 국민들이 협력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고 싶은 국가의 대표로서 저를 환영하기를 열망하고 있었다고 확인받았습니다.
당연하게도 도쿄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소동의 주목표는 일본 정부가 조약을 체결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해당 조약의 비준을 막기 위해 미친 듯이 날뛰어도 실패했다는 사실은 미래의 일본과 미국의 밝은 미래를 증명합니다. 명백하게 국제 공산권에서 이번 실패의 무게는 저의 예정된 방문을 막는 것보다 그들에게 치명적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도쿄에서 일으킨 폭동의 또 다른 목적은 우리 국민들의 자신감을 저하시키고 미국의 대 일본 정책을 수정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몇 주 전 일본에서 있었던 유쾌하지 못한 일들로 인해서 경제 협력에 지장이 가고 대다수의 일본과 미국 국민들을 이어주는 유대에 영향이 갔다면, 이는 필시 국제 공산권의 크나큰 승리였을 것입니다.
일본은 다시 한번 위대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전후 기간 동안 일본은 공들여 스스로의 이미지를 자국의 의무와 타국의 권리를 존중하며 책임감 있고 평화를 추구하고 협조적인 자유세계의 국가로 쇄신하였습니다. 일본은 유엔과 그 밖의 국제 무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1949년 공산주의자들에게 중국 본토를 빼앗긴 이래로, 미국과 다른 극동 국가들을 상호 이익을 위해 더 강하게 연결해야 하는 필요성은 모두에게 자명합니다. 우리는 일본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과 함께 여러 활동을 통해 이 연결고리들을 만들고 강화하기를 원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저의 최근 순방은 여러 예시 중 하나일 뿐입니다. 현재 상황에서 극동에 대한 ‘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기’ 정책은 자유세계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못할 것입니다.
중공에 비하여 영토와 인구가 적은 다른 극동의 자유로운 국가들은 오직 미국과 자유 일본과 협력해야만 자유 안에서 살아남고 번영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원조 계획과, 동남아시아조약기구와 같은 양자 혹은 집단 방위 체제 그리고 해당 지역 내에서의 우리의 존재감을 통해 우리는 이들 국가들에게 큰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자유롭고 우호적인 일본이 이미 스스로 지원 계획을 실행하고 있듯이 미국의 노력에 힘을 보탤 수 있습니다.
지난겨울 일본 총리께서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저의 6월 19일 방일 계획을 철회하시는 바람에 일본 정부와 국민들을 만나지 못하고 미국의 선한 의지를 증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나머지 다른 극동 국가 방문과 양측 정부의 일미 조약의 최종 승인이 불러온 긍정적인 영향을 잊어선 안될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호적인 국가 정상들과의 만남으로부터 빚어진 전반적인 상황 개선은 자유세계 전체에서 인정받고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저와 함께 마닐라, 타이베이 그리고 한국으로 가서 미국을 향한 우호, 감사, 존경의 도가니를 직접 목도하셨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전에 중동, 유럽, 북아프리카, 남아메리카 그리고 캐나다와 멕시코의 위대한 도시의 거리들을 메웠던 수백만 명이 보여준 것과 같이, 그곳에서의 인파들은 우리나라를 향해 한 가지 벅찬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빛나는 얼굴, 응원의 함성, 노래, 화사하게 그려진 현수막 그리고 집에서 만들어온 팻말이 전하는 바로 그 메시지는 그들이 미국의 동반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존엄성과 법 앞의 평등이라는 우리의 가치를 공유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신을 믿고, 미국인들이 그들의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미국인들이 그들의 진보에 진심으로 헌신하고 있다고 믿고 있고, 이것은 그들에게 엄청난 의미이며, 이것은 양측에 분명합니다.
당시 그 현장에선 그들의 진심에 눈과 마음을 닫지 않은 모두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게다가, 국내나 해외에서 제가 만난 자유로운 국가의 지도자들은 사석에서나 공석에서 시행하기 위한 세부 사항에 여전히 논의되고 협상되어야 하는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방향성과 정책들에 동조한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우리 측의 정부 고위층이 더 자주 방문했으면 하는 희망을 전달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미국과의 협력을 통한 물질적 성장의 가시적인 증거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새롭게 태어난 희망을 증언했고 그들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 미국이 현재의 외교관계 기조를 저버리거나 우리 우호국들과의 협력 구상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가 과거에 거뒀거나 곧 거둘 모든 외교의 열매들이 순식간에 썩어버린다는 것을 강조 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자들이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숙하게 분별하여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전략이 고의적으로 자유세계를 분열시키고 동맹과 친구 사이에 마찰을 일으키려 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함정에 빠져선 안됩니다. 우리 모두는 자유와 정의로운 평화를 위해 굳건하게 견뎌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공산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정책의 성공적인 시행을 위해선 우리가 속거나 회유당하거나 눈이 가려지거나 두려워해선 안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자유세계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때 소심하거나 소극적이거나 유약해서는 공산주의자들의 세상을 지배하려는 야욕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패기와 용기로 담대한 도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강해야 하고 평화는 힘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됩니다. 우리는 단단하되 절대로 공격적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공의롭되 절대로 두려움을 퍼뜨리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정직하게 친선의 손길을 내밀 때 우리는 언제나 친선의 손으로 화답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저의 앞으로의 순방과 관련해서는 지금으로서 어떤 계획이나 특별한 여행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음 1월까지 남은 시간과 이미 예정되어 있는 일정들을 감안했을 때, 해외 순방을 위한 초대를 승낙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공산주의의 지배가 자유세계가 자유를 위협하는 한 저는 미래의 어떤 미 대통령이라도 자유세계의 단결을 고무시키기 위해서 우호국들과의 상호 방문이 중요하다고 느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확실하게 말씀드립니다. 만약 가까운 미래에 벌어지는 뜻밖의 상황이나 환경에 의해서 저의 순방이 우리와 타국 간의 유대를 결속시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면, 저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관련 업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피로나 애로사항 혹은 그 어떤 위협이나 논쟁이 있을지라도 우리나라와 우호국, 자유를 위한 명분, 그리고 세계의 평화와 정의를 위해서라면 또다시 움직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Dwight D. Eisenhower, Radio and Television Report to the American People on the Trip to the far East. Online by Gerhard Peters and John T. Woolley, The American Presidency Project https://www.presidency.ucsb.edu/node/234965
Radio and Television Report to the American People on the Trip to the far East.
June 27, 1960
[ Delivered from the President's office at 7:30 p.m. ]
My friends:
I have just returned to Washington from a trip to the far East. It has been a trip so marked by events of significance that I shall try this evening to give you a simple background of fact, against which these recent events can be viewed in perspective.
To begin, a few personal observations on the trip I have just concluded:
First, American relations with the Philippines, Taiwan, Korea and Okinawa have been strengthened.
Second, the people of these far Eastern lands took advantage of the opportunity given by this visit to demonstrate anew their long and ardent friendship with and for the people of America. The American people are gratified, I am sure, as am I, by these heartwarming demonstrations.
Third, the ratification of the Mutual Security Treaty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Japan represents an important victory for the free World--a defeat for international communism.
And now, let's look at the background of this trip--and the others I have taken in the interest of world peace.
This trip was planned as one of a series which have, in toto, taken me nearly around the world, to twenty-seven nations of Europe, the Middle East, South Asia, North Africa, the Americas, and the far East. Those nations I have visited during the last ten months have populations reaching an aggregate of over a billion people.
To understand where these visits fit into the over-all foreign relations of this government we must go back to 1953, to the time when I was assessing the world situation with the late Secretary of State Dulles, preparatory to my assumption of the office of the Presidency.
At that time we recognized that the Communists had, for some years following the conclusion of World War II, taken advantage of the chaotic aftermath of conflict--and of our own self-imposed military disarmament-to indulge in a continuous campaign of aggression and subversion in Asia and Eastern Europe. They had disrupted the lives of millions of free people, causing lowered living standards and exhausted economies. China and its half billion people had been lost to the free World. The war in Korea, then in condition of stalemate, still dragged on.
We began our studies with one essential fact before us. It had become clear, by 1953, that the accumulation of atomic weapon stockpiles, whose use could destroy civilization, made resort to force an intolerable means for settling international disputes. Only in the rule of law--which meant the attainment of an enduring peace with justice could mankind hope for guarantee against extinction.
With these facts in mind we concluded, and have since been guided by the conviction, that there were several things which we should_ do simultaneously, all of them in conformity with the ideals expressed in the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It was, and is, mandatory to present before the world, constantly and vigorously, America's great desire for peace and her readiness to sit at the conference table to discuss specific problems with anyone who would show an equal readiness to negotiate honestly and in good faith. This we continue to do in spite of difficulties such as the regrettable action of the Soviet delegation in walking out of the 10-nation Disarmament Conference at Geneva this morning. But, from the very beginning we have made it clear that until real progress toward mutual disarmament could be achieved, our first concern would be to keep our own defenses strong, modern, and alert.
We tried to identify all those areas in the world where serious trouble could erupt suddenly, and developed suggestions for correcting the causes of unrest and of enhancing stability in such localities. Through cooperation with our friends we have succeeded in removing causes of friction in many of these areas.
In support of these purposes, we have sought, from the beginning, frequent personal contact with responsible governmental officials of friendly nations. Indeed, we have felt it wise, also, to seek to improve communications between ourselves and the Soviet government. Akin to this effort was one which has come to be called the people-to-people program--a completely new type of venture in international relations which has been amazingly successful.
Along with these objectives, we have constantly striven to devise better methods of cooperation with our friends, working out with them programs by which together we could improve our common security and raise living standards. Our Mutual Security Program has been and is a vital means of making such cooperation effective.
To carry out the purpose of proclaiming and demonstrating to the world America's peaceful intentions, we first made a number of policy statements and a series of concrete proposals that might lead to fruitful discussions with the Soviets.
As early as April of 1953, I suggested disarmament talks with the Soviets and pledged that I would urge the United States to apply a substantial portion of any savings realized through mutually acceptable disarmament to the improvement of living standards in the less developed nations.
Later that year I proposed, before the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that we devote all discoveries in atomic science to peaceful uses. Nineteen months later at Geneva I suggested the Open Skies method of mutual inspection.
In the meantime, the Secretary of State set out tirelessly to make calls on friendly governments and to strengthen collective security. In return we issued invitations to Heads of State to visit America and her people. Other good will visits were concurrently made by the Vice President and other personal representatives.
Many Heads of Government or State responded promptly to our invitations to visit this country. In the past seven and a half years, more than seventy Heads of State and Prime Ministers have come to the United States (some of them several times) in visits extending from a few days to some weeks. In this respect the period has been without precedent. Other visitors are to come in the near future. Indeed, tomorrow we shall be honored by the arrival in Washington on such a visit of the King and Queen of Thailand, and later in the year the Crown Prince and Princess of Japan, and the King and Queen of Denmark.
I early began to receive urgent invitations to make return visits to the countries whose Heads had paid us the courtesy of coming to see America and our way of life
Many months ago we concluded that I should personally accept some of these invitations, as opportunity should present itself. Secretary Herter, first as Under Secretary of State and later as Secretary of State, enthusiastically concurred. Overseas visits by me, all of us felt, would be a strong support of other successful programs.
The great value resulting from these journeys to twenty-seven nations has been obvious here and abroad. Throughout the world there has been opportunity to emphasize and re-emphasize America's devotion to peace with justice; her determination to sustain freedom and to strengthen free World security through our cooperative programs; her readiness to sacrifice in helping to build the kind of world we want.
These visits involved, of course, valuable conversations between Heads of State and Government, as well as the promotion of understanding among peoples.
However, except for so-called Summit and the NATO Heads of Government meeting, none of my visits has been planned or carried out solely as a diplomatic mission seeking specific agreements, even though discussions have invariably involved important issues.
Incidentally, I believe that Heads of State and Government can, occasionally, and preferably on an informal basis, profitably meet for conversations on broad problems and principles. They can, of course, also convene to give solemn approval to agreements previously prepared by normal diplomatic methods.
But Heads of Government meetings are not effective mechanisms for developing detailed provisions of international compacts, and have never been so considered by this government.
On the other hand, the good will aspects of a visit by a Head of Government can frequently bring about favorable results far transcending those of normal diplomatic conferences. They have resulted in the creation of a more friendly atmosphere and mutual confidence between peoples. They have proved effective in bringing closer together nations that respect human dignity and are dedicated to freedom.
Indeed it seems apparent that the Communists, some time ago, reached the conclusion that these visits were of such positive value to the free World as to obstruct Communist imperialism. Thus they have sought every possible method to stop them. Through their propaganda they bitterly opposed my entry into the Philippines, in Taiwan, in Okinawa, in Korea, and, of course, Japan.
In Paris last month they advanced false and elaborate excuses for cancelling my invitation to visit the Soviet Union, when all that was necessary to say was that they found it inconvenient to receive me.
With their associates in Peiping, they went to great lengths and expense to create disorders in Tokyo that compelled the Japanese government to decide, under conditions then existing, that it should revoke its longstanding invitation for me to visit that sister democracy.
These disorders were not occasioned by America. We in the United States must not fall into the error of blaming ourselves for what the Communists do; after all, Communists will act like Communists.
One clear proof of the value, to us, of these visits is the intensity of the opposition the Communists have developed against them.
Respecting Japan, in spite of the outrageous conduct of a violent and disorderly minority, I have been assured that the people there were, in overwhelming majority, anxious to welcome me as a representative of a nation with which they wished to cooperate and to have friendly relations.
Of course, the basic objective of the Communist-inspired disorders in Tokyo was to bring about the rejection by the Japanese government of the Treaty. That the Communists were defeated in their frantic efforts to prevent ratification of that Treaty speaks well for the future of Japanese-American relations. Obviously that signal defeat for International Communism far outweighs, in importance, the blocking of my scheduled visit.
Another purpose of the Communist-inspired riots in Tokyo was to weaken confidence between our peoples and to persuade the United States to change its basic policies toward Japan. It would be a tremendous victory for International Communism if we were to permit the unhappy events of the past several weeks in Japan to disrupt our economic relationships with that nation; or to weaken the feeling of friendship and understanding which unites the vast majority of the Japanese and American people.
Japan has once again become a great nation. Over the postwar years she has painstakingly created a new image of herself, the image of a responsible, peaceful and cooperative free World nation, mindful of her obligations and of the rights of others. Japan has made a fine record in the United Nations as well as elsewhere on the international stage.
Since the loss of mainland China to the Communists in 1949, the need to link the other nations of the far East with the United States more strongly, in their mutual interest, should be apparent to all. We seek, and continue to build and strengthen these links, with Japan as well as with the other countries, by actions of many kinds--of which my recent trip was but a single example. In the present circumstances, a far Eastern policy of "waiting for the dust to settle" will not meet the free World's need.
The other free countries of the far East, small in relation to the massive area and immense population of Red China, can survive in freedom and flourish only in cooperative association with the United States and a free Japan. Through our aid programs, through our bilateral and collective defensive arrangements such as SEATO, through our very presence in the area, we help them greatly. And a free and friendly Japan can reinforce this American effort, as indeed she is already doing through aid programs of her own.
Because of the Prime Minister's necessary withdrawal of his urgent invitation of last winter for me to visit Japan on June 19th, I was of course unable to meet with the Japanese Government and people, or to bring to them assurances of American good will. This was disappointing, but we should not forget the favorable effects of visits elsewhere in the far East, as well as the final approval of the Japanese-American treaty by both Governments. Moreover, the general improvement that has come about through exchanges of visits by friendly Heads of Government is recognized and appreciated throughout the free World.
I wish that every one of you could have accompanied me to Manila, Taipei, and Korea and thus witnessed for yourselves the outpouring of friendship, gratitude and respect for America. The throngs of people there, like the many millions who, during earlier journeys, lined the streets of great cities in the Mid-East, Europe, North Africa, South America--as well as in Canada and Mexico--had one overwhelming message for our nation.
That message, expressed in glowing faces, friendly shouts, songs, gaily painted placards, and home made signs, was that they wanted to be partners with the United States. They share our ideals of dignity of man and the equality of all before the law--they believe in their God; they believe that the American people are their friends. They believe that Americans are sincerely devoted to their progress which means so much to them, and which is so evident on every side.
These demonstrations have been inspiring to all who have not closed their eyes and minds to their meaning. Moreover, the leaders of the free peoples I have met here or abroad have assured me, privately and publicly, that they approve of America's purposes and policies, even though details of implementation are frequently subjects for discussion or negotiation. They have expressed the hope that visits to their countries by the senior officials of our Government might be of greater frequency. They have shown to me evidence of their marked material progress through American cooperation. They have testified to the reborn hope and restored confidence of their peoples.
Let me stress, however, that all the profit gained by past and any possible future trips will be quickly dissipated should we Americans abandon our present course in foreign relations or slacken our efforts in cooperative programs with our friends.
This is what the Communists want. It is imperative that we act with mature judgment.
We must recognize their tactics as a deliberate attempt to split the free World, causing friction between allies and friends. We must not fall into this trap; all of us must remain firm and steadfast in our united dedication to freedom, and, to peace with justice.
Above all, we must bear in mind that successful implementation of any policy against Communist imperialism requires that we never be bluffed, cajoled, blinded or frightened. We cannot win out against the Communist purpose to dominate the world by being timid, passive, or apologetic when we are acting in our own and the free World's interests. We must accept the risks of bold action with coolness and courage. We must always be strong but we must never forget that peace can never be won by arms alone; we will be firm but never truculent; we will be fair but never fearful; we will always extend friendship wherever friendship is offered honestly to us.
Now a final, personal word--
So far as any future visits of my own are involved, I have no plans, no other particular trip in mind. Considering the shortness of the time before next January, and the unavoidable preoccupations of the few months remaining, it would be difficult to accept any invitation for me, again, to go abroad.
But so long as the threat of Communist domination may hang over the free World, I believe that any future President will conclude that reciprocal visits by Heads of friendly Governments have great value in promoting free World solidarity.
And this I assure you. If any unforeseen situation or circumstances arising in the near future should convince me that another journey of mine would still further strengthen the bonds of friendship between us and others, I would not hesitate a second in deciding to make still an additional effort of this kind.
No consideration of personal fatigue or inconvenience, no threat or argument would deter me from once again setting out on a course that has meant much for our country, for her friends, and for the cause of freedom--and peace with justice in the world.
Thank you and--good night.
Dwight D. Eisenhower, Radio and Television Report to the American People on the Trip to the far East. Online by Gerhard Peters and John T. Woolley, The American Presidency Project https://www.presidency.ucsb.edu/node/234965